한국전쟁에 쓰던 수통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오기선 2023-10-31 11:04:08 124

한국전쟁에 쓰던 수통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이기동 목사

(육군정보통신학교 봉화교회)

2011년 8월 여의도침례교회로부터 군인교회 전임사역자 파송을 받았습니다. 그해 12월 4일 11사단 예하 대대교회에 부임하여 첫 주일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처음의 설레임, 감동, 감격, 감사, 은혜의 기억보다는 창고를 개조한 판자로 된 교회에 온풍기 등유가 없어서 12월 강원도의 겨울 날씨를 고스란히 느끼며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손이 떨리고 입이 떨려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저의 군선교 사역은 이런 떨림으로 시작됐습니다. 처음 대대교회를 섬겼고 여단교회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이제는 자운대에 있는 육군정보통신학교 봉화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용사들을 만났고, 간부,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흔적들만 남는 세월이었습니다. 

군인교회를 섬기며 용사들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룩무늬 군복이 디지털 무늬 군복으로 변했고, 군모자가 베레모로 변했고, 검정 전투화가 갈색 전투화로 변했습니다. 생활관은 선임이 없는 동기생활관제로 변했습니다. 병사식단은 1997년 15사단 50연대에서 제가 먹었던 된장국에 양배추김치는 없고 종류도 다양한 맛있는 반찬이 나오고 있습니다. 토요일은 늦게 기상하여 아침 겸 점심을 먹는 브런치 데이가 생겼습니다. 저는 24개월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디고 승리사단에서 승리의 전역을 했습니다. 노란 봉투에 전역비 17,000원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 병장들 월급은 백만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용사들 손에 소총과 삽이 아니라 핸드폰이 들려져 있는 모습을 보았고 저는 군종들과 군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용사들의 병영생활은 제가 군생활하던 시절과는 더 이상 비교대상이 될 수 없고, 가깝게는 5년 전의 시간들과 비교해 봐도 상상도 못할 만큼 긍정적으로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습니다. 

용사들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간부들의 모습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부들의 변화는 용사들과는 다른 모습의 변화였습니다. 부대마다 용사들의 수는 줄고 있고 간부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사들이 하던 임무들을 간부들이 대신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용사들의 처우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간부들의 처우는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용사들의 책임과 의무는 간소화되고 간부들의 책임과 의무만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제가 군인인지 유치원 선생님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자조 섞인 지휘관의 푸념을 듣는 실정까지 왔습니다. 군입대를 희망하는 장교, 부사관의 지원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품고 초급장교, 부사관으로 군입대를 했지만 현실의 자괴감으로 의무복무만 하고 전역하는 간부들이 많아졌습니다. 용사와 간부를 동시에 바라보는 제 눈에는 지금 군대는 어딘가 불안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는 듯 합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지만 안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이 몰아치고 격동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유일하게 평온한 곳이 있습니다. 폭풍속에서도 미동하지 않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군선교입니다. 군대는 스스로 변하고 있습니다. 내홍(內訌)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선교는 아직도 한국전쟁에 쓰던 수통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하는 군대에 발맞춰 군선교도 변해야 합니다. 군대에서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대상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필요하고 말씀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 대상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용사들보다 초급간부들이 더 불안한 마음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용사들의 자살률보다 간부들의 자살률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건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입니다. 선교의 대상이 고통받고 말씀의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이웃이라면, 지금 군선교는 철저하게 그 이웃을 외면한 채 배부른 유대인들만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용사들의 처우는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앞으로 계속 용사들의 숫자는 줄어들 것입니다. 반면에 초급간부를 비롯한 간부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군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상이 용사보다 간부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간부들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용사들만 붙잡고 청년선교, 군선교의 미래를 외치는 것은 의미없는 외침이 될 것입니다. 

“군선교는 황금어장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100%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아직 한국교회의 미래가 밝은 것은 군인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군인교회는 전도가 부족해도 용사와 간부들이 매주 교회를 찾아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지 않아도 고액의 연예인, 유명인들의 간증집회, 찬양집회를 하지 않아도 용사, 간부들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기적과 부흥이 매주 일어나는 곳이 군인교회입니다. 대학교에 그 많던 선교단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몇 개의 선교단체만 어렵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어려운 군환경속에 있는 군인교회는 아직 줄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군선교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선교의 대상을 정확히 구분하고 바라보며 균형있는 군선교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군선교의 새로운 길과 방법이 요구되는 시간에 온 것 같습니다.


군선교신문 제384호 7면 광장